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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金顯哲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4권 제1호
발행연도
2015.3
수록면
67 - 9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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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초까지 일본에서 일부 지식인들과 민간단체의 "아시아주의" 등에 관련된 논의의 전개과정과 이중적인 성격을 살펴봄으로써, 동아시아라는 지역에 대한 인식의 변화과정과 한일간 교류와 지역통합에 대한 구상의 변천과정의 특징과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일본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진출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한중일3국을 비롯하여 아시아각국간의 유대와 단결을 주장하였다. 이에 공감하여 1880년 "흥아회"에 한중일 3국의 인사들이 참석하였으며, 나카에 초민 등 민권파는 아시아국가들의 자유와 독립을 구상하였다. 그러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 다루이 도키치의 "대동합방론" 등 일본내 아시아연대와 한중일 관계에 관한 논의는 지역국가간 대등한 협력의 추구에서 벗어나 일본이 동양의 맹주가 되어 한반도와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됨으로써 침략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근대 일본의 대표적 우익단체중의 하나인 "현양사"의 도야마 미쯔루 등은 당시 일본에 망명중인 조선의 개화파와 중국의 손문등과 교류하였다. 또한 현양사 등 민간단체에 속한 일부 일본인들은 조선과 중국에 건너가서 활동하고 일제의 한국강제 병합과정과 대륙진출에도 관여하였다. 이상 살펴본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의 아시아연대 구상이 당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가에 영향을 끼친 측면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당시 대외적으로 아시아연대를 주장한 일부 일본 지식인들의 주장과 민간단체의 활동이 의도적이었든 또는 결과적으로 메이지 일본 정부의 대외팽창과 한반도 침략의 명분으로써 원용되었던 측면은 그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근대 일본에서 논의된 아시아주의의 이중성 내지 다양한 측면과 이에 관련된 한중일 지식인들의 교류와 상호영향의 복잡한 양상에 대해서는 당시 한중일 3국간 평화스런 지역질서 구축의 실패라는 교훈과 21세기 새로운 지역협력 또는 공동 비전의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향후 심층적 연구를 통해 자세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릿말
2. 근대 일본의 대외 위협인식과 아시아관의 전환
3. 19세기후반 일본내 민간단체 및 인사들의 한반도 및 대륙 진출 구상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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