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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지현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06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47 - 78 (32page)
DOI
10.37331/JKAH.2022.6.106.47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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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미륵사지 서석탑 심주석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봉영기는 그간 『삼국유사』 무왕조를 근거로 미륵사의 창건 주체를 무왕과 선화공주로 추정해 왔던 학계의 분위기를 일시에 바꾸어 놓았다. 사리봉영기에는 백제왕후인 사탁적덕의 딸이 가람을 건립하고 사리를 봉영한 사실이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미륵사 건립 주체의 문제는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선화공주의 실존 여부와 함께 관련된 여러 쟁점들-7세기 초 백제와 신라의 관계, 무왕대의 정치 상황 등-이 다시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미륵사 건립 주체에 관한 논쟁의 외연은 계속 확장되었다. 이에 본 글에서는 미륵사 건립 주체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쟁점 2개를 기존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재검토해 보았다. 먼저 선화공주의 실존 여부와 관련하여 무왕의 왕비에 대한 여러 견해들과 함께 『삼국유사』 무왕조의 사료적 가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미륵사 건립 주체를 다수로 설정하는데 중요한 근거로 활용된 미륵사의 건립 과정과 가람 구조를 검토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비록 미륵사와 관련된 기록들은 무왕의 부인이 미륵사의 건립에 관여하였다는 것을 전하고 있지만 그 부인으로 지목되었던 ‘선화공주’의 실재는 입증할 수 없으며, 미륵사는 단계적으로 조영되었을지라도 각원이 별개로 분리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사리봉영기에서 말하고 있는 사탁왕후에 의한 가람의 건립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마지막으로 사리공양과 장엄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를 고려하면 미륵사의 건립은 당시 백제 왕실과 왕권의 일면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왕실에서 건립한 사찰로서의 미륵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보다 심도있는 고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안하였다.

목차

국문 초록
I. 머리말 - 미륵사지 서석탑 사리봉영기의 발견
II. 『삼국유사』 무왕조와 선화공주
III. 미륵사의 건립 과정과 가람 구조
IV. 맺음말 - 백제 왕실과 미륵사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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